2편을 읽고나니 왜 책 제목에 산책이란 단어가 들어가는지 알것 같았다.정치 뿐 아니라 개신교의 활약상이나 근대화에 대한 저항 등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었다. 말기 조선의 여러모습들을에둘러살피고 있는 느낌이다.
2편의 부제가 개신교 입국에서 을미사변까지인데 한 마디로 외세의 각축장이돼 물리고 뜯기는 처량한조선, 근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혼란 등조선의처참한 몰골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청나라와 일본 두 나라는 거침없이 조선에 주둔하는가 하면남의 나라 땅에서 전쟁을 벌였다. 왕비가 궁궐 안에서 그것도 왕이 지켜보는 앞에서 외국 낭인들 손에 처참하게 시해당했고.
이 정도면조선은 이미 망할 날을 받아놓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도저히 국가라고 할 수없을 정도로 방어력은 무기력하기 이를데 없었고,주권은 훼손됐다.대체 백성들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이렇게극도로 어지러운 세상을 겪어야 하는건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근대사 산책2 편에서 가장돋보인 것은 역사에 대한 해석의문제였다. 역사적인 사건들이 정치적상황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기도 하고 시대와 맞물려 혹은 사관에 따라어떻게 그 평가가 달라지는지를 보여주었다.
동학농민운동 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동학농민운동 은 60년대만 해도 동학란 으로 소개됐 그 뒤 여러 차례 용어 변화가 있었고, 지금도 동학농민혁명, 동학혁명, 등 여러 용어로 불리우고 있다.
이것은 당순히 명칭만의 문제가 아니고, 농민 이 주도했다는 그 계급을 명확하게 밝히면서 신분제등봉건제를 탈피하려는 동학의 노력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동학농민운동의 성격을논하는학자들의 갑론을박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동학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이렇게 다양한 견해가 있다는 것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자주적이고 반외세 탈봉건적인 성격이라는 것에 학계 의견이 일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오히려 유교적인 질서를 추종했고, 대원군의 이름을 이용해 참여를 유도하기까지 했다는 견해도 있어서 놀라웠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평가 외에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다양한 견해가 존재했다.
사실 역사에 대한 평가에 대해의문을 품게 될 때도 있었다.미화된 건 아닌가, 이분법적이건 아닌지, 미리 결론을 정해놓거나 오늘날 기준에 꿰 맞추는 건 아닌지, 진영논리가 작용하는 건 아닌지 등등.
동학에 대한 평가는 식민사관에서 벗어나면서 다양해졌고, 민중봉기의 성격이 부각됐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필자는 민비가 뮤지컬 명성황후 등대중 문화상품을통해 미화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이점은 나도 지난 1편에서 지적한 바가 있는데 강준만선생도 같은 생각이었다고 하니,내가 헛소리한 건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어떤 사건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다른 평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이외에도 산책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볼만한 얘기거리도 여러가지였다. 특히 노다지의 뿌리가 되는 말인 No Touch가 광산채굴권을 미국인에게 넘긴데서 비롯된 것이라거나. 사진 찍으면 혼이 나간다는 당시 속설에 대해서나, 제중원에서 아이를 살해한다는소문에 대해서.또단발령이 내려지자 격하게 저항하거나 도피했던 당시조선인들이야기, 경복궁에 전기가들어오던날 이야기등은 외세에 의해 근대화가 추진되다보니 반발감이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과 함께 당시 서구문물이 가져다 준 충격을재미있게 전해주고 있다.
이 시기의 역사는 정말 다사다난했다. 한번 읽어서는시간이나 순서도 헷갈리기 일쑤이다. 시아버지 대원군과 며느리 민비 사이의 갈등은 데드 매치(Death Match)나 마찬가지였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사이는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졌다. 서로를 죽이려 들만큼 파괴적인 양상으로 치달았다.이 둘의 싸움은 백성들에게는 백해 무익이었고, 외세를 끌어들여 조선의 파탄을 부채질했다. 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는지.
역사를 돌아보는 과정 자체가 속이터지게 된다. 그래도 어쩌랴. 미우나 고우나 내나라이고 우리 조상들이 겪어내고 지켜온 역사인 것을. 이 시기의 역사를 읽다보면 생각나는 말이 있다.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는 러시아 시인의 말이.
이 책은 나를 분노할 수 밖에 없고, 또 근대화 과정의 해프닝을 보면서 탄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한국 근대사 산책 은 고독한 한국인 등의 저작으로 잘 알려진 사회문화 비평가 강준만 교수가 경제뿐 아니라 삶의 전 영역을 아우르며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시대를 종합하고 있는 한국 근대사 책이다.
저자는 자위 와 자학 을 넘어선 근대사 읽기를 통해 근대 한국의 풍경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을 편견 없이 보여줌으로써 ‘교과서’가 지니는 경직성에서 벗어나 한국 근대사를 생동감 넘치게 몽타주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전문 학자들의 논문은 물론 당대 신문기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자료를 망라하여 지나간 역사의 파편들을 큰 그림으로 종합하면서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큰 그림으로서의 역사, ‘메타 역사’ 서술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조 500년이 양반사회의 출현으로 유교와 전통문화가 발전하는 안정 이라는 축복을 받았으나, 그로 인해 개인의 창의력이 말살된 것은 저주였다고 이야기한다. 개화기는 외세의 침투 ·침략이 이루어진 가운데 그 모순이 폭발한 시기였다. 저자는 외세에게 힘없이 당한 망국의 시간이 저주였으나 축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심적 터전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부끄러워할 것도 많지만 자랑할 것도 많았기에, 어느 한 쪽에도 집착하지 않는 시각, 역사를 보는 제3의 길로 한국 근대사를 다시 본다.
강준만의 한국 근대사 산책 제2권은 개화기 역사에 대한 ‘자위(自慰)’와 ‘자학(自虐)’을 모두 넘어서 제 3의 길이라는 시각으로 개신교 입국에서 을미사변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 한국 근대사 산책 2 - 개신교 입국에서 을미사변까지
제1장 갑신정변의 유산
01 알렌의 민영익 치료, 한성순보의 폐간
실질적인 개신교 입국|한성순보의 폐간|한성순보와 청국의 갈등|광인사의 출판활동|사진의 수용과 부작용
02 한성조약과 톈진조약
한성조약과 온건개화파의 득세|김윤식의 시무론|톈진조약의 두 얼굴
03 쌀의 품귀, 담배의 확산
1884년 방곡령 실시|연초제조소·판매소의 집중 설립|담뱃대 사용 금지령|조선인들의 지극한 담배 사랑
제2장 개신교의 활약, 거문도 사건
01 언더우드·아펜젤러의 입국
1885년 4월 5일 부활절|언더우드와 알렌|정동제일교회의 창립|성경 번역과 찬송가 전파
02 제중원 설립과 선교사들의 갈등
백성을 구제하는 제중원|선교사들의 사치 이유|선교사들의 내부 갈등|음주·흡연을 죄악시한 청교도주의
03 영국 함대의 거문도 점령
청·러시아·영국의 각축전|후쿠자와의 악담|대원군의 귀국|조선 왕을 감독하는 총독이 된 원세개|웨베르와 손탁의 입국|거문도 사건의 역사적 의의|거문도 사건의 세 가지 일화
04 유길준의 한반도 중립화론
유길준의 귀국|유길준과 김옥균의 만남|유길준과 부들러의 중립화안|햇빛을 보지 못한 중립화론
제3장 근대화를 향한 움직임
01 전신 개통, 한성주보 창간
경인 전신업무 개시|한성주보의 창간|한국 최초의 신문광고
02 배재학당·이화학당 개교
육영공원의 설립|배재학당의 설립|이화학당의 설립|기독교가 선도한 출판문화|천주교·개신교의 갈등
03 경복궁 건청궁을 밝힌 전기
건청궁을 밝힌 100촉짜리 전구 두 개|물불·묘화·덜덜불·건달불|전기 100년사의 재발견
04 주미한국공관 설립
원세개의 방해공작|알렌의 일기에 나타난 박정양 일행의 모습|박정양·이하영·이완용|데니의 청한론
제4장 근대화에 대한 공포와 저항
01 외국인이 조선 아동을 잡아먹는다
종두술을 보급한 지석영의 수난|1888년 영아 소동|제중원이 영아 살해의 총본산?
02 박문국 폐지, 한성주보 폐간
재정난으로 인한 한성주보 폐간|1994년 한성주보 제16호 발견|서양 미술의 전파
03 1880년대 후반의 민생고
양반계급의 부정부패|일그러진 입신양명 문화|일본의 경제적 침투와 약탈|민족공동체에서 교회공동체로
04 원세개의 횡포, 알렌의 도전
조선 상인의 철시동맹파업과 시위투쟁|원세개의 라이벌은 알렌|왜 원세개만 가마를 타고 입궐하는가?
제5장 동학농민전쟁
01 동학교도의 보은·원평 집회
농민항쟁의 폭발, 동학의 확산|동학의 교조신원운동|동학의 보은·금구·밀양 집회|보은 집회에 대한 평가|북접·남접의 갈등
02 동학농민군의 정읍 고부 봉기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고부 봉기를 키운 이용태|왜 하필 호남인가?
03 김옥균 암살 사건
김옥균 암살 시도|김옥균, 중국 상하이로 가다|홍종우의 총탄 세 발에 쓰러진 김옥균|김옥균의 무덤은 세 개|김옥균 부인 유씨의 한(恨)
04 김옥균·홍종우 평가 논쟁
일본은 김옥균 암살계획을 몰랐는가?|홍종우, 출세를 위한 변신이었나?|조재곤의 홍종우를 위한 변호|일본의 김옥균 이용|북한의 김옥균 평가|신복룡의 평가|하영선·허동현의 평가
05 동학농민군의 고창 무장 기포
고창 무장 기포|부안 백산 대회|황토현 전투|5·16은 이념 면에서 동학혁명과 일맥상통?|김대중의 참여 때문에 빚어진 사건
06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논쟁
고부 기포설 대 무장 기포설|무장 기포에 대한 정읍의 반발|정읍·고창 관계자들의 논쟁|무장 기포 기념일 행사|백산 봉기 기념일 행사|정읍시의회의 성명서 채택
07 동학농민군의 전주성 점령
농민군의 함평 점령, 대원군 감국 통보|청군·일본군의 출병|전봉준·김학진의 상충되는 고민|전주화약(全州和約) 체결|농민군의 집강소 통치|손화중의 무리가 최강|남조선 개벽을 꿈꾼 김개남|동학농민군 전주 입성 113주년 기념행사
제6장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01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일본 낭인들의 입국|천우협과 전봉준의 만남|조선 병사의 피로 물든 경복궁|대원군의 재등장
02 조선의 재앙이 된 청일전쟁
풍도 앞바다에 수장된 청 병사 1000명|러일전쟁을 위한 전초전?|조선 민중의 공포와 고통|일본의 평양 전투 승리|청일전쟁의 기본 구도는 아직 살아 있다
03 자율과 타율 사이에 선 갑오개혁
갑오개혁 자율론과 타율론|사회신분제 폐지|400년 묵은 과부 재가 논쟁|유길준과 김홍집|일제의 꼭두각시를 거부한 대원군|박영효·서광범의 귀국|이노우에 가오루의 등장, 대원군의 퇴진|과거제도 폐지의 충격|이승만의 인생이 뒤바뀌다|너무 늦은 신교육으로의 전환
04 동학 농민군의 제2차 봉기
전라감사 김학진의 제안|전봉준·김학진의 의기투합|삼례 재봉기|왜 7월에 봉기하지 않았나?|일본군의 다롄·뤼순 점령
05 공주 우금치 전투의 비극
남·북접간의 노선 차이|7일간의 우금치 혈투|동학군의 계급적 고립|전봉준의 체포·압송|김개남의 체포·효시|학살당한 농민군은 최소 20만 명|우금치의 동학혁명군 위령탑
06 김홍집·박영효 연립내각 수립
박영효 내무대신, 서광범 법무대신|민비와 박영효의 일시적 화해|김홍집·박영효 연립내각의 한계
제7장 동학농민혁명의 좌절
01 홍범 14조 제정 반포
홍범 14조의 내용|매우 불길한 행사?|고종의 눈물겨운 노심초사|승려의 도성출입금지 해제
02 망명 유학 10년 만에 귀국한 윤치호
조선 기독교 대표자의 탄생|윤치호의 유교 비판|일본에 대한 생각을 바꾸다
03 일본 한성신보의 창간
조선 신문이 없는 7년 8개월간의 공백|한성신보의 침투전략|최초의 신소설도 한성신보에?
04 전봉준·손화중 처형
민중의 영웅으로 각인된 전봉준|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이준용 모반 사건|3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콜레라
05 동학농민혁명 논쟁
동학란에서 동학농민혁명운동으로|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유영익의 주장|박노자·하원호의 논쟁|허동현의 주장|배항섭의 주장|김용옥의 주장|전봉준과 대원군의 관계|전봉준은 동학교도였나?
제8장 3국 간섭·을미사변·단발령
01 러시아·독일·프랑스 3국 간섭
시모노세키조약|일본의 랴오둥반도 반환|정동파의 대두|박영효의 재망명|여우사냥을 위해 입국한 미우라 고로
02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
일본 낭인들의 천인공노할 범죄|대원군의 처신|제3차 김홍집내각과 을미의병|유길준의 역할|민비 시신 능욕설|뮤지컬 명성황후 논쟁|명성황후 우상화?|시해범 후손들의 사죄 방문|명성황후 사진 논쟁
03 실패로 끝난 춘생문 사건
민비 시해 6일 만에 떨어진 황후 간택령|공포로 잠을 못 이룬 고종|미국공사관으로의 피신 기도|춘생문 사건은 일본의 음모?
04 미국에 망명한 서재필의 귀국
11년 만에 귀국한 서재필|서광범의 활동|유길준의 지원|일본의 방해 공작|서재필과 이승만의 만남
05 태양력 도입·변복령·단발령
500년 조선사 최대의 개혁안|1990년대까지 지속된 과세 논쟁|변복령에 대한 저항|강압적인 단발령 시행|최익현과 보형(保形)의병|피차 양보할 수 없는 상징 투쟁|이승만과 김구|단발령 특수|조선은 모자의 나라
06 운산금광 채굴권 양여
외국어학교의 설립|알렌이 따낸 운산금광 채굴권|노다지라는 말이 나오게 된 이유|고종의 미국 짝사랑이 잉태한 결과
07 전신과 우편의 발달
1891년 북로전선 개설|민중의 전신 시설 파괴|1895년 우편업무 재개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