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만 들었다. 유대인들이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인간임을 드러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박탈하는 것이었다고. 그들은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낼 수 있는 모든 껍질로부터 배제 당했다. 심지어 온몸의 털이란 털을 다 밀어버렸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이 누구인지 그들 스스로도 궁금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중병에 걸려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존재마냥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들에게 죽음을 선사한 건 그들에게서 인간성을 앗아간, 인간답지 않은 인간들이었다. 상대가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사람이 사람을 그리 죽일 수 없다. 나치에 몸담은 사람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어떠한 인간의 향기도 발견할 줄 몰랐다. 사람을 죽여 놓고 자신이 죽인 사람과 꼭 닮은 자신의 배우자, 자신의 아이를 만나러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들은 가정에서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후에 다시금 살인을 저지르러 수용소로 출근했다. 홀로코스트. 직접 이를 겪은 이들은 물론 나처럼 이야기만으로만 접한 이들에게도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긴 이 단어를 나는 요즘 세상에서 곧잘 느낀다.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을 뿐, 정부의 전수 조사가 행해지면서 지금까지 수면 아래 잠기어 있던 세상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라고 사람들은 이야기하는 아동학대 문제로부터 난 폭력의 최절정에 위치한 홀로코스트를 떠올린다.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이가 사랑을 갈망할 때마다 부모는 아이를 때렸다. 단지 자신이 게임을 하는데 방해가 돼서, 시끄럽게 아이가 울어서 등의 이유로. 사랑하기 때문에 때린다는 부모의 얼토당토 않는 설명으로 폭력은 가려졌고, 몸과 마음이 멍든 아이는 죽어갔다. 일등이 되기 위해 상대의 자존심마저도 짓밟는 사람들에게서도 홀로코스트와 닮은꼴 심성이 느껴진다. 비열함, 인간답지 않음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고, 때로는 얼굴에 철판 깔고 그 노하우 한 번 배워볼까 하는 마음을 품어보기도 했다. 인간 세계에서도 이러하니 시선을 동물 세계로까지 넓힌다면 사례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동물 홀로코스트는 문제작이라 할 만 했다. 채식주의가 도덕적으로 옳은가를 놓고 벌어진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근에는 채식이 꼭 건강에 좋지만은 않음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기도 하다. 그래도 사람이 고기를 먹어야 기운이 나는 거 아니냐는 엄마의 이야기가 귓가에 울리는 것도 같다. 아니,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은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맛나는 고기를 포기할 의도가 전혀 없을 것이다. 과연 우리의 육식이 유대인 대학살과 비견할 수준의 폭력성을 지녔을까. 육식을 포기하고 오로지 식물만을 섭취하는 게 세계 평화를 위해 유익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도 제법 될 듯하다. 자연 생태계에서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것을 폭력으로 칭하지는 않는다. 약육강식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질서라고 모두가 말한다. 근데 유독 인간에 대해서만은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게 아니냐고 묻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고기 섭취를 전면 중단하고 ‘비건’이 되는 이는 거의 없으리라 확신한다. 동물을 잡아먹는 일을 관두지는 않되 식용 동물의 생이 지속되는 동안만큼은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존중해주는 게 가장 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좁은 우리에 가둬두고 알만 낳게 한다거나 성장 촉진제를 과다 주사해 짧은 기간 동안 몸이 부풀도록 만드는 등의 행동을 엄격히 자제하는 것 정도가 우리가 현실적으로 행할 수 있는 최선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인간이 그러하듯 동물 또한 특정 존재의 먹이가 되어야만 하는 존재여서는 곤란하다. 이를 인간에게 적용해본다면 불치병에 걸린 이에게 장기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육식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동물에게 어마어마한 위해를 가하고 있다. 고기를 먹는다는 건 동물이 지닌 생명성을 전면으로 부인하는 일종의 ‘폭력’에 해당한다.홀로코스트를 인간 아닌 동물에게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잘은 모르겠다. 나치 치하의 폭력을 경험했던 많은 이들이 전쟁 이후 동물 학대에 반대하는 움직임에 동참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제 자신의 생명성을 부인 당한 유대인들조차도 동물 학대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할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해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왜 인간은 다른 종과 다를뿐더러 우월하기까지 해야만 한단 말인가. 다만 대상이 인간이 아닐 뿐, 우리는 대상을 동물로 바꾼 채 과거의 폭력을 반복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기 위해 군인들은 숱한 연습을 필요로 했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도록 그들은 처음에는 사람 아닌 동물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경험을 반복했다. 홀로코스트는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으로부터 출발했다. 동물을 죽이며 체득한 폭력성을 이용해 사람들은 제 눈을 찌름으로써 자신과 동등한 다른 존재를 아무렇지 않게 죽여 나갔다. 과거의 경험이, 지금은 동물에 국한되고 있지만 또 다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도 가능하단 점을 말해주는 듯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오늘따라 유독 절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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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PART 1
종차별, 인종차별 ━ 차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종차별주의는 어떻게 동물들을 노예화하고, 억압하고, 살생해왔는가
chapter 1
인간 우월주의와 동물 착취 : 인간 우월주의는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가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크게 구분 짓고 다른 생명체에 대해 ‘힘이 곧 정의’라는 인간의 태도는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가
대도약│동물의 가축화│무자비함과 무심함│인간 노예제│가축으로서의 노예
인간의 동물 지배│존재의 거대한 사슬│인간과 동물의 분리│인간 이하
chapter 2
늑대, 원숭이, 돼지, 쥐, 해충 : 동물로 비하된 사람들
사람들을 동물에 빗대서 비하하는 관행이 박해와 착취, 살인의 서막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아프리카인│아메리카 원주민│필리핀에서의 인디언 전쟁 │황색 원숭이│중국 돼지
베트남 흰개미와 이라크 바퀴벌레│유대인 비하│홀로코스트와의 대면
PART 2
우리에게 당신들은 모두 나치예요
산업화된 현대국가에서 사람과 동물에게 가해지는 제도화된 폭력들은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chapter 3
도축의 산업화 : 미국을 거쳐 아우슈비츠로 가는 길
동물의 가축화 / 노예화가 어떻게 인간 노예제의 모델과 영감이 되었는가
아메리카 식민지에서의 도축│돼지고기의 도시│유니언 스톡 야즈│기념비적 규모의 죽음
그렇게 다르지 않다│가족 경영 도살장│하이테크 도축장│최근의 사태 전개
헨리 포드: 도축장에서 죽음의 수용소까지
chapter 4
종족의 개량 : 동물육종에서 대량학살까지 ......................................................119
동물육종이 어떻게 인간의 강제적 단종, 안락사, 집단학살 같은 우생학 조처들로 이어졌는가
우생학의 출현│미국 육종학자협회│미국 우생학 운동│가계 연구│강제 단종│독일의 우생학│미국-독일의 동반관계│미국의 나치 우생학 지지│미국인들의 방문│힘러, 다레, 회스│독일의 T-4 계획과 가스실의 고안│동물 착취에서 대량학살로
chapter 5
피도 눈물도 없이 : 미국과 독일의 학살센터들
미국은 현대세계에 도살장을 제공했고 나치는 가스실을 제공했다! 20세기 두 학살 공정의 공통적인 양상들
학살 과정의 능률화│활송장치, 깔때기, 관│병자, 약자, 부상자의 처리│어린 동물들의 도살
수용소의 동물들│히틀러와 동물들│우리는 왕자처럼 산다│인도적 도살
PART 3
홀로코스트의 반향들 ━ 종의 장벽을 넘어서
홀로코스트는 유대인과 독일인의 동물 옹호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chapter 6
우리 역시 그랬다 :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동물 옹호
타인에 대한 고도의 감성과 감정이입 능력을 지닌 홀로코스트 경험자들, 그들이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하여
정신이상과의 싸움│생존자들의 목소리│세 개의 계명│엑스레이 비전│홀로코스트의
이미지들│비누와 신발│운명적인 조우│제3세대 활동가들│이상한 커플│홀로코스트를 가능케 했던 것│우리가 배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chapter 7
경계 없는 도살장 :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의 자애적 시각
우리가 동물을 다루는 ‘나치’식 방식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의 작품들을 통해 본 동물의 권리
아이작 싱어의 열한 번째 계명│미국으로│끔찍한 형태의 오락│사탄과 도살
살코기에 대한 욕망│고기와 광기│신성한 생명체│채식인의 항의│트레블링카는 어디에나 있었다│그들도 신의 아이들이다│동물에 대한 애정│임박한 파괴의 그늘│삶의 한 방식
chapter 8
홀로코스트의 다른 측면 : 목소리 없는 자들을 위한 독일인들의 목소리
나치 독일의 문화적 유산과 경험을 가진 이들은 동물에 대한 제도화된 폭력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나치 독일군에서 동물 옹호가로│반란과 슬픔│히틀러의 아기│육식을 하는 사람들은 그 일을 다시 일어나게 할 수 있다│동물 형제들│아우슈비츠의 거짓말│동물 홀로코스트
에필로그
해제
주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