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저는 그저 다음 영화를 구상하고 있을 뿐이에요. 영화를 통해서 하고 싶은 게 자꾸 생겨요. 영화로 돈을 벌겠다는생각은 접고 있어요. 다만 제가 가족들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는 책임져야겠죠. 영화 연출로는 그 돈을 벌기 어려우니까 다른 일로 벌겁니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제 영화가 필요한 분들이 여전히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다입니다. 그러면 계속 가는 거지요.
BONG 그 사람 영화는 참 특이했다 , 그런 코멘트 하나면 만족할 것 같습니다. 그게 예술가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 아닌가요?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것 말입니다. 그게 이 대량복제 시대에 유일하게 예술가가 누릴 수 있는 영예겠죠. 저 사람 영화 참 특이했다, 저 사람이 죽으면 저런 영화들을 다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 발자국이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RYOO 지금 인용하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속의 두 사람이 대사로 대신 말해버렸네요. 제가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룬 것은 맞죠. 그런데 사람은 항상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는 것 같아요. 지금은 여든 살이 되어서까지 영화를 계속 만들어서 제대로 된 작품을 남기고 싶은 게 직업인으로서의 제 꿈입니다. 정말 영화를 잘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제 가족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서 좀더 허락된다면, 저와 제 가족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라구요.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서 무엇보다 살아남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YOO 저는 영화의 외피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관객들은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극장을 찾을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좋은 영화는 그 안에서 인생을 발견할 수 있는 경우라고 생각해요. 저는 탈출이 아닌 발견의 영화를 찍는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영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거울처럼 볼 수 있는 영화, 진정한 삶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은 거죠. 그건 기술이나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인식의 깊이에 대한 문제일 겁니다.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좀더 현명해지고 싶고, 좀더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런 영화를 일평생 한 편만 찍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YIM 저는 제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굉장히 궁금합니다. 지금 이곳에 태어나서 한 생을 살아야 하는 이유 말입니다. 바로 그런 것에 대한 영화를 마지막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KIM 그거 괜찮네요.(웃음) 더도 덜도 말고, 진짜로 저를 감독으로 기억하셨으면 좋겠네요. 방송인이나 다른 게 아니라, 정말 감독으로 살았고, 감독으로 살 만한 사람이었다는 말까지 들으면 무척 고마울 것 같아요. 사랑을 받으려고 애쓰면서 영화를 만들었고 사람들을 많이 사랑했던 감독이었구나, 뭐 그런 이야기. 그런데 인터뷰를 하다가 밤이 깊어서 그런가, 제 스스로 좀 닭살스럽기는 하네요.(웃음)
- 본문 중에서-
700페이지가 넘은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꼼꼼한 인터뷰어와 더 꼼꼼한 인터뷰이 6인의 인터뷰는 정말 그 어떤 스릴러보다 숨막혔고, 어떤 코미디보다 웃겼으며, 어떤 드라마보다 감동적이더라. 혀를 내두를만큼 철저한 준비를 해 온 이동진 기자의 노력에 대한민국 대표 영화 감독 6인은 멋지게 보상해준 느낌이랄까.
이것은 길고 긴 대화를 통해 구성한 감독론이며, 오늘의 한국영화에 대한 연애편지다.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전문 기자인 이동진이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들을 만나 묻고, 듣고, 기록한 영화이야기로, 2년 여간 진행하고 발표해 온 부메랑 인터뷰 를 책으로 묶어 내놓은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감독론 이라 칭할만한 심도 있는 내용은 인물별로 평균 10여 시간을 할애한 인터뷰의 진가를 느끼게 하며, 어디서도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각 감독들의 작품 속 대사들에서 적절한 질문을 끌어내 이를 바탕으로 감독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했으며, 이후 발표된 영화들을 담아내기 위해 추가적인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그들의 모든 영화를 대사 하나까지 꼼꼼히 살피고서야 인터뷰를 시작했기에 보다 세밀하고 진솔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완성된 결과물은 독자들에게 기분 좋은 자극을 준다.
홍상수, 봉준호, 류승완, 유하, 임순례, 김태용 감독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그들 대표작들의 스크린 이면에 숨어 있는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고, 그에 대한 작가의 독자적인 시선도 만나볼 수 있다. 책 속에는 영화라는 매체와 그 텍스트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이루고 있는 의식과 사상들 또한 녹아 있어 읽는 이를 더 매료시킨다. 책의 뒷부분에는 작가가 인터뷰 대상이 되어「씨네21」의 김혜리 기자에게 털어놓은 그 자신의 생각들과 부메랑 인터뷰의 뒷이야기들이 들어있어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프롤로그 부메랑 인터뷰를 시작하며
비루한 삶과 부조리한 세계, 허위의식과의 치열한 싸움 : 홍상수
섬세한 질감과 풍부한 양감, 끝까지 지켜낼 이미지를 향하여 : 봉준호
장르의 쾌감과 삶의 비감 사이, 걸음을 멈추지 않는 장남의 영화 : 류승완
비주얼보다는 리얼리티 탈출이 아닌 발견의 영화를 위해 : 유하
살펴보는 자의 연민, 함께 울어주는 영화의 위로 : 임순례
유연한 태도와 깊은 감수성 뜻하지 않은 선물 같은 영화 : 김태용
성실한 형식주의자의 사생활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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