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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세계 역사를 들여다보면, 한 사람의 예기치 않은죽음으로 정치나 역사의 물줄기가 바뀐 예는 수도없이 많다. 특히나 자연사가 사고사가아닌 죽음, 암살을 통해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세력을 제거하는 방법은 봉건시대나 정치 후진국에서는 종종 발생하는 사건인데, 우리만 해도197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됐을 뿐 아니라해방정국에서는 각 진영 지도자들이 잇따라 암살을 당하면서 분단을 향해 치닫던 당시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를 걸었던 역사를 갖고 있다. 암살 에서는 해방정국 그 혼란기에 총탄에 쓰러져간 5인, 현준혁,송진우,여운형, 장덕수, 김구의 죽음과 그 배후를 추적하고 있다. 암살은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폭력성과 극단성에서도 위험하지만그 배후를은폐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도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해방정국에서 암살이 빈번했던 것은 당시이념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졌고, 이념단체들이 다수 결성되고, 분단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한 것이 배경이 됐다.그렇다고 해도 해방직후부터 49년까지 4년 사이에 지도자 다섯 명이 암살됐다는 것은 그만큼 정국이 정치력으로풀려가지 않았다는 의미였다.해방 후 암살의첫 희생자가 발생한것은 해방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45년 9월 평양에서였다.조선공산당 평남위원회 책임자 현준혁이 총탄에 희생된 것이었다. 현준혁은 지금 시대에선낯선 인물이기는 하지만,38선 이북에서 활동하던 주요 정치가 중 한명이었다.아무래도 해방뒤 첫 희생자였고, 다른 네 명의 암살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이 현준혁 암살 사건에 눈길이 쏠렸는데, 내 기억속에는 현준혁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어린 시절 KBS 반공드라마에서 현준혁이 암살되는 내용이 방송된 걸 본 게 생각나서였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 드라마에서는 공산주의자가 죽인 걸로 나왔던 것 같은데, 평양에서 발생한 공산주의자 암살 사건이니, 그들 사이의 암투가 작용했을 거라는 추측이일반적일 것이다.그런데 유력한 설은공산주의자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배후로는 친일파 염웅택이 조직한 대동단 이라는 비밀결사가 거론되는데, 이 조직을 예사로이 넘길 수 없는 것이 이 조직원들이 월남해서 훗날 극우적 조직인 백의사 로 변신해 남한에서 발생한 다른 암살을 주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안두희가 이 단체 출신이라고 하니 영화에서나 볼법한 전문적인 정치테러조직이라고 할까.해방정국에서 발생한 암살은 정치적으로 이견이 대립하던 시기에 일어난다.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 뒤에 송진우가, 미소공동위원회 기간에 여운형이, 유엔조선임시위원단 입국 직전에 장덕수가, 반민특위 습격 직후에 김구가 희생되는데, 모두 범인이 체포되고 단독 범행으로 마무리지지만 그 배후 세력이나 진장에 대한 의문은여전히존재하고 있다. 백의사 나 군과 경찰이 암살에 협조했다는 의심이 매번 제기 된다는 것은단순히 개인이나 단체의 정치적 이견 차이를 뛰어넘어조직적으로 시도되고, 진상이 은폐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기도 하다. 암살로 인해 정국은 통일이 아닌 분단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진행됐다는 것은 암살의 목적이 무엇이고 어떤 세력인지를 암시해주고 있지만, 진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많다. 이들의 죽음을 생각할 때면 안타깝기 이를데 없는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오도된 가치나,대화와 타협 공론을 바탕으로 한 정치가 아닌 극단적인 폭력이 동원되는 정치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것도 갓 출범한 새로운 사회에 독소가 되고 말았다.그나마 최근 일련의 연구로 이들 암살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면서,이시기에 대한 배후와 진상을 밝히는 성과가 조금씩나오고 있다는 것으로, 또 현대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것으로 조금은 위안 삼으려한다.
해방 정국의 혼란 속에서 일어난 정치지도자 5인의 암살사건!
한국 현대사 왜곡의 서막이 된 암살사건들의 진상과 배후를 파헤친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5년은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기였다. 새로운 정부 수립을 둘러싸고 좌우 정치세력 간 경쟁과 충돌이 극심했고, 미군과 소련군이 38선을 경계로 진주하면서 국제적 간섭도 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의 뜻을 수렴하고 미·소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정치인의 리더십이 무엇보다도 필요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갈등의 조정과 통합이 절실했던 순간마다 그 중심에 서 있던 주요 정치인들이 암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현준혁,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그리고 김구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 근현대사에 발자취를 남긴 정치지도자라는 점만 아니라, 모두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극적으로 끝난 이들의 삶은 혼란스러운 해방 정국의 상징처럼 남았다.

그들이 삶을 마감한 해방 정국은 자주적으로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노력이 분출한 시기였지만, 다른 한편으론 불행한 ‘암살의 시대’였고, 왜곡된 현대사의 서막이 열린 때이다. 해방 정국에 일어난 정치 요인 암살은 민족지도자들은 물론 민중이 염원하고 있던 통일 독립국가 건설을 좌절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더구나 이들 암살사건의 정확한 진상이나 배후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따라서 광복 71주년에 이른 지금, 해방 정국에서 결정적인 시점마다 발생한 ‘정치 암살’을 재조명하고 성찰하는 작업은 이 시기 역사의 이면을 파헤칠 뿐만 아니라 통일이 아닌 분단으로 귀결된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또한 이 땅에서 그와 같은 사건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성찰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프롤로그 | 해방 직후 정치 암살, 막을 수 없었나?

첫 번째 이야기 | 현준혁 해방 후 첫 정치 암살의 희생자가 되다
두 번째 이야기 | 송진우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안 발표와 함께 쓰러지다
세 번째 이야기 | 여운형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와 함께 생을 마감하다
네 번째 이야기 | 장덕수 죽어서 김구를 법정에 세우다
다섯 번째 이야기 | 김구 38선을 베고 쓰러지다

에필로그 | 친일파 미청산과 이념 갈등이 가져온 해방 정국의 비극
후주